복자 17위
복자 17위
어농성지는 대표 순교복자 윤유일 바오로와
조선에 첫 사제로 입국한 복자 주문모(야고보) 신부를 비롯해,
1795년 을묘박해와 1801년 신유박해에서 순교하고 시복된
‘을묘박해 3복자’와 ‘신유박해 14복자’를 현양하는 성지입니다
어농성지는
대표 순교복자 윤유일 바오로와
조선에 첫 사제로 입국한
복자 주문모(야고보) 신부를 비롯해,
1795년 을묘박해와
1801년 신유박해에서 순교하고 시복된
‘을묘박해 3복자’와 ‘신유박해 14복자’를
현양하는 성지입니다
을묘박해 복자 3위
주문모 신부님을 모셔오기 위하여 한겨울 중국 북경을 말 모이 꾼으로 위장하여 여러 차례 왕례하며 밀사 역할을 하신 어농성지 대표 복자 윤유일 바오로,
역관으로서 중국어에 능통하여 주문모 신부님의 체포위기에 중국 신부로 위장하여 도망갈 시간을 벌어주고 체포된 최인길 마티아,
신부님이 오시면 드릴 미사 준비를 위하여 포도가 없었던 그 시대에 포도나무와 재배 방법을 옷깃에 꿰메어 숨겨 들여와 보급한 지황사바
위 세분은 1795년 주문모 신부님을 피신시키고 대신 잡혀 신부님이 어떻게 오셨으며 교우들이 어디에 있는지 발설하지 않고 혹독한 형벌을 당하다가 순교함,
이후 교회에서 시복된 ‘을묘박해 3복자’입니다.
신유박해 복자 14위
1801년 을묘박해에서 순교하고, 이후 교회에서 시복된 ‘을묘박해 14복자’입니다.

주문모 야고보
1752~1801
조선 첫 번째 신부
서울 새남터·효수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을 받았다. “신부가 길가 좌우 구경꾼들을 두루 둘러보고 목이 마르니 술을 달라고 하자, 군졸이 술 한잔을 바쳤습니다. 다 마시고 나서 성 남쪽 10리 되는 연무장(한강 모래밭의 이름은 노량)으로 갔습니다. 귀에 화살을 꿴 후 군졸이 죄목이 적힌 판결문을 주어 읽어보게 하였습니다. 그 조서는 꽤 길었는데 신부는 조용히 다 읽고 나서 목을 늘여 칼을 받았습니다…. 목을 베자 갑자기 큰 바람이 일고, 검은 구름이 하늘을 덮고, 천둥과 번개가 요란하고 눈부시어, 장안 사람들이 모두 놀라고 황겁하지 않은 이가 없었습니다.”
(황사영 「백서」 중)
이미지 출처: 한국천주교주교회의(CBCK)
본 이미지는 성지 안내 목적의 임시 사용 중이며,
저작권 사용 승인 절차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정식 승인 후 사용 여부가 변경될 수 있습니다.
어농성지는 대표 순교복자 윤유일 바오로와
조선에 첫 사제로 입국한 복자 주문모(야고보) 신부를 비롯해,
1795년 을묘박해와 1801년 신유박해에서 순교하고 시복된
‘을묘박해 3복자’와 ‘신유박해 14복자’를 현양하는 성지입니다
어농성지는
대표 순교복자 윤유일 바오로와
조선에 첫 사제로 입국한
복자 주문모(야고보) 신부를 비롯해,
1795년 을묘박해와
1801년 신유박해에서 순교하고 시복된
‘을묘박해 3복자’와 ‘신유박해 14복자’를
현양하는 성지입니다
을묘박해 복자 3위
1795년 을묘박해에서 순교하고,
이후 교회에서 시복된 ‘을묘박해 3복자’입니다.
신유박해 복자 14위
1801년 을묘박해에서 순교하고,
이후 교회에서 시복된 ‘을묘박해 14복자’입니다.
이미지 출처: 한국천주교주교회의(CB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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